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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주의

이슬람 신비주의

신비주의는 이슬람교도들이 신과의 체험을 통해 신의 사랑을 직접 찾으려는 믿음과 관행의 한 측면이다. 수피라는 용어는 아랍어로 양털이라는 뜻의 'suf'에서 유래된 말로 초기 이슬람 수도자들이 양털로 된 옷을 입고 다닌 데서 나왔다. 이 수도자들은 아랍어로 파키르(faqir), 페르시아어로 데르비시(dervish)로 알려졌는데 그 뜻은 가난한 사람이다. 이슬람 신비주의는 발전과정에 따라 몇 가지 단계로 나뉘는데 첫째, 초기 금욕주의 단계, 둘째, 신과의 사랑을 찬미하는 고전적 단계, 셋째, 수피들의 형제적 우호관계를 다짐하는 종단의 단계로 나뉜다(→ 우애조합). 그러나 이러한 구분과 관계없이 이슬람 신비주의의 역사는 신비주의자 개인의 신비적 체험에 크게 의존한다.

이슬람 문학에 끼친 수피 사상의 가장 큰 공헌은 아랍어·페르시아어·터키어로 지어진 매력적인 서정시이다. 수피 사상은 시에 관심을 둔 모든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다. 남녀 사랑에 관련된 시는 대부분 페르시아에서 전래된 것으로 인간과 아름다운 젊음을 노래한 것이다. 인도 이슬람교도들의 신비주의적 노래 가사에는 "영혼은 사랑을 주고 싶은 아내이며 신은 사랑의 대상인 남편이다" 라고 표현되어 있다. 사나이·아타르·루미의 페르시아어 작품은 수세기 동안 시인들에게 신비적 생각과 표현을 제공한 원천이 되었다. 또 신에 대한 찬미는 수피 시의 전형적인 양상이다. 신비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출신지역의 대중에게 그들 자신의 언어로 신비로움을 전달해야 했으므로 각 지역의 민족, 지역 문화의 발전에도 크게 이바지했다.

신비주의자는 신의 지혜가 담긴 〈코란〉에서 주로 그들의 전문 용어를 인용하여 사용하며 심오한 해석을 덧붙임으로써 최후 심판 날의 무서움을 읊었다. 그러나 그들은 신이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도 신을 사랑한다는 구절도 찾아내어 신비주의적 사랑의 근거로 삼고 있다. 그들은 또한 종교법을 엄격히 준수할 목적으로 예언자의 생활태도와 행동양식을 모방하는 데서 행동의 근간을 찾았다. 수피는 신에게 한 치라도 더 가까이 접근하려고, 아무리 작은 이기심일지라도 버리려고 끊임없이 자신을 정화하여 자신의 의도와 행동에서 절대적 순수성(ikhlas)을 찾는다. 또 절대신에 대한 믿음이 매우 강하며 심지어 내일을 생각하는 것조차 불경으로 생각한다. 즉 신에게 접근하여 궁극적으로 합일하는 길은 금욕생활, 즉 자기 정화를 통해서 가능하다고 본다(→ 깨달음).

수도의 길은 개인의 참회에서 시작된다. 절대 유일신에게 접근하려고 작정한 초심자는 도사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 즉 도사가 수도원에서 초심자에게 엄격한 금욕적 관행을 훈련시키면 초심자는 철저히 순종해야 되는 것이다. 인내와 감사는 수도의 길을 가는 데 있어서 참회보다 더 높은 단계이다. 즉 빛과 밝음을 찾아가는 수도의 길은 영지(靈知 gnosis), 즉 신과 인간의 사랑 단계에서 절정에 이른다. 정통 수니파는 이 점을 맹렬히 비난한다. 그들의 절대신에 대한 사랑은 순종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도의 길의 최종 목적지는 절대신에게 들어가 자기 소멸(fana⁾)하며 완전히 합일(合一)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 신비주의자는 합일에서 수도의 길이 끝나지 않고 절대신 속에서 다시 여행하여 남는다(baga⁾)고 보았다. 최초의 수도원은 페르시아인 헤이르(1049 죽음)가 만들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종단은 12세기 아브드 알 카디르 알 질라니(1166 죽음)가 세웠으며 거의 전 이슬람 세계에 전파되었고 바그다드에 있는 그의 무덤은 지금도 순례객들의 성지이다.

13세기에 이르러 전 이슬람 세계에 매우 큰 종단들이 설립되었다. 이 종단들은 선교활동에 이바지했으며, 또 종종 정치적 영향력도 발휘했다. 예를 들면 1781년에 북아프리카에서 만들어진 티자니야 종단은 그들의 영향력을 세네갈과 나이지리아까지 확대시켰고, 19세기초에 시작된 사누시야 종단은 이탈리아에 대항하여 싸웠으며 리비아 왕국을 건설했다. 자아 실현의 방법을 매개로 수피 사상은 신플라톤 철학, 헬레니즘, 영지주의(Gnosticism)와 결합하여 신지주의의 체계를 형성시켰다. 이러한 신지주의는 1191년 시리아에서 처형당한 페르시아인 앗 수라와르디에 의해 조명(照明 ishraq) 철학으로 발전되었고, 그의 뒤를 이어 스페인 태생의 이븐 알 아라비가 존재의 단일성을 내세워 이성보다 신비적 직관을 우위에 두었다.

 

출처 : 브리태니커